우리는 평생을 ‘속도’라는 단어에 매몰되어 살아왔습니다. 남들보다 한 발 앞서야 했고, 남들이 쉴 때 달려야 했으며, 남들이 걷기 시작할 때 우리는 뛰어야 했습니다. 그렇게 수십 년을 가속 페달만 밟으며 달려온 끝에 마주한 ‘은퇴’라는 정거장. 처음 그곳에 내렸을 때 제가 느낀 감정은 해방감보다는 ‘불안함’에 더 가까웠습니다.
길 위를 쌩쌩 달려 나가는 차들을 바라보며, 정거장에 홀로 남겨진 것 같은 기분. “이제 나는 무엇을 향해 달려야 하지?”, “이렇게 가만히 있어도 괜찮은 걸까?”라는 질문이 매일 아침 저를 괴롭혔습니다. 아마 이 길을 먼저 걸으셨거나, 혹은 걷고 계신 여러분도 한 번쯤은 이런 막막함을 느껴보셨을 겁니다.
1. 멈춰 서야 비로소 보이는 풍경들
그런데 속도를 줄이고, 때로는 멈춰 서서 가만히 주위를 둘러보니 이전에는 결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출근길 지하철 역 입구에 피어있던 꽃이 사실은 매년 저를 향해 인사를 건네고 있었다는 것, 늘 마시던 편의점 커피 대신 정성껏 내린 차 한 잔에서 이토록 깊은 향이 난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내 옆을 지켜주던 가족들의 눈가에 언제 이렇게 깊은 주름이 생겼는지 같은 것들 말입니다.
가속 페달에서 발을 떼고 나서야, 저는 인생의 진정한 디테일들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라이프 디자인이란 거창한 미래를 설계하는 것이 아니라, 내 곁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지만 속도 때문에 놓쳐버렸던 보석들을 하나씩 발견해나가는 과정이었습니다.
2. ‘생산성’의 기준을 바꾸다
우리는 흔히 무언가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내야만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은퇴 후의 삶에서 디자인해야 할 가장 중요한 가치는 ‘효율’이 아니라 ‘충만함’입니다.
오늘 하루 얼마나 많은 일을 처리했느냐가 아니라, 오늘 하루 내가 얼마나 온전히 나로 존재했는지가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정성껏 차린 한 끼 식사를 즐기고, 좋아하는 책 한 권을 읽으며 마음의 울림을 느끼고, 해 질 녘 노을을 바라보며 감탄하는 일. 이 사소해 보이는 행위들이 사실은 우리 삶을 가장 빛나게 만드는 재료들입니다.
남들의 속도계에 맞춰 살던 삶을 끝내고 나만의 속도계를 장착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은퇴 후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인생 디자인’의 첫 단추입니다.
3. 당신이 걷는 지금 이 순간이 ‘황금기’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인생의 황금기를 사회적 정점에 있었던 시절로 기억하곤 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제 감히 말하고 싶습니다. 인생의 진짜 황금기는 내 시간을 오롯이 내 의지대로 쓸 수 있는 지금 이 순간이라고요.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내가 긋고 싶은 선을 긋고, 내가 칠하고 싶은 색으로 하루를 채울 수 있는 지금이야말로 가장 찬란한 시기입니다. 비록 예전처럼 빠르지는 않아도, 우리는 이제 풍경을 감상하며 걸을 수 있는 여유를 가졌습니다. 서툴러도 괜찮고, 조금 돌아가도 괜찮습니다. 내가 가는 그 길이 바로 나만의 디자인이 되니까요.
천천히, 하지만 단단하게
블로그에 글을 올리고 스케치를 하며 보내는 저의 요즘은 그 어느 때보다 ‘느리지만 단단’합니다. 속도를 줄이니 마음의 근육이 붙기 시작했고, 그 근육은 제 삶을 지탱하는 커다란 힘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혹시 지금 정거장에 홀로 남겨진 것 같아 불안하신가요? 그렇다면 안심하셔도 좋습니다. 당신은 지금 뒤처진 것이 아니라, 당신만의 아름다운 풍경을 제대로 보기 위해 잠시 속도를 줄인 것뿐입니다.
자, 이제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세요. 당신의 스케치북에 담길 수만 가지의 아름다운 색깔들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당신의 삶은 지금 이 순간, 당신의 손끝에서 가장 눈부시게 디자인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속도계는 지금 어떤 숫자를 가리키고 있나요? 잠시 멈췄을 때 비로소 보인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Life Ateliers]의 라이프 디자인 노트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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