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저는 제 삶의 가장 소중한 캔버스인 ‘집’을 다시 디자인하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우리 집은 저에게 그저 잠시 머물다 떠나는 정거장이었습니다. 아침이면 서둘러 나갔다가, 밤늦게 지친 몸을 뉘이고 내일의 전투를 준비하던 곳. 하지만 하루 종일 이 공간에 머물며 아침 스케치를 하고 차를 마시다 보니,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너무 많은 물건에 가려져 있던 창가의 햇살, 그리고 정작 내가 편히 쉴 곳은 없었던 복잡한 거실의 풍경들 말입니다.
1. 어제의 나를 정중히 보내주는 일
가장 먼저 시작한 일은 ‘비워내기’였습니다. 서재 한 구석을 가득 채우고 있던 수년 전의 업무 서류들, 언젠가 입을 거라며 걸어두었던 딱딱한 정장들, 그리고 ‘나중에’를 위해 쌓아두었던 불필요한 욕심들.
그 물건들을 하나씩 정리하며 저는 단순히 짐을 버린 것이 아니라, 어제의 나를 정중히 배웅하는 예식을 치렀습니다. “그동안 고생 많았어,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어”라고 속삭이며 말이죠. 물건이 떠난 자리에는 신기하게도 허전함 대신 고요한 평화가 찾아왔습니다.
2. 거실 한 구석, 나만의 ‘라이프 디자인 스튜디오’
비워낸 자리 중 햇살이 가장 잘 드는 창가에 작은 테이블 하나를 옮겨 놓았습니다. 그리고 그곳을 제 마음대로 ‘나의 인생 스튜디오’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거창한 인테리어 공사는 아닙니다. 그저 제가 좋아하는 스케치북, 읽고 싶었던 책 몇 권, 그리고 작은 화분 하나가 전부인 소박한 공간입니다. 하지만 이 작은 공간은 이제 저에게 세상 그 어느 곳보다 창조적인 장소가 되었습니다. 누군가의 지시가 아니라 오직 저의 취향과 영감으로 채워진, 제 인생의 두 번째 항해를 지휘하는 ‘조종실’이 된 셈입니다.
3. 오후 4시의 햇살이 가르쳐준 것
공간을 정리하고 나니, 이전에는 몰랐던 사실을 하나 더 알게 되었습니다. 오후 4시경이면 거실 깊숙이 들어오는 햇살이 얼마나 따스하고 아름다운지를요.
먼지 낀 창을 닦아내고 불필요한 가구를 치우고 나서야, 저는 비로소 그 빛을 온전히 맞이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삶도 이와 같지 않을까요? 빛나는 삶을 디자인한다는 것은, 무언가를 계속 더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 소중한 빛이 들어올 수 있도록 내 삶의 창을 닦고 빈 공간을 만드는 일이라는 것을요.
비워야 비로소 빛나는 것들
은퇴 후의 삶이 가끔 막막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아마도 지나간 시간의 무게를 여전히 양손 가득 쥐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손을 가볍게 비워야 비로소 오늘 내미는 새로운 기쁨의 손길을 잡을 수 있습니다.
오늘 저는 제 스튜디오에 앉아 지는 노을을 바라봅니다. 방금 비워낸 서랍처럼 제 마음도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그리고 그 빈자리에는 다시 ‘내일은 어떤 색으로 나를 채울까’ 하는 설레는 기대감이 차오릅니다.
여러분도 오늘, 마음 한구석 혹은 방 한쪽을 비워보시는 건 어떨까요? 그 빈자리를 제일 먼저 찾아오는 건, 아마 당신의 삶을 가장 아름답게 비춰줄 햇살일 것입니다.
다음 시간에는 “공간을 정리하며 발견한 오랜 일기장(혹은 사진첩) 속에서 만난 ‘청춘의 나’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오늘도 봄햇살처럼 건강하세요^^
[Life Ateliers]의 라이프 디자인 노트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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